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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eting/퍼온글

패션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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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의 산파, 패션

홍대 지하철역 5번 출구, 저녁 6시부터 8시까지는 그야말로 시장의 장관을 보는 때다. 마치 동남아시아 관광객이 북극지대에서 오로라를 보는 것처럼 패션 마케터에게 이 시간은 난생처음 보는 웅장한 패션의 파노라마를 보는 시간이다. 특히 금요일 밤에는 그야말로 거룩한 패션의 성자들이 성지를 방문하는 물결로 입을 다물 수 없는 장관을 보게 된다. 특히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진 사람, 최신 트렌드를 소화한 사람, 잡지에 나온 브랜드 화보를 그대로 따라 입은 사람, 일본 잡지를 보고 따라 입은 사람을 비롯해 존경할 만한 코디를 과시한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패션 마케터에게는 이들은 멋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희귀한 '컨셉'들이다. 가끔 떼로 몰려오는 최신'스타일'들도 볼 수 있다. 더 흥분되는 것은 미래의 컨셉을 가진 소비자들도 볼 수 있다. 이때의 기분은 해변가에서 깨진 소주병을 주우려다 옆에 빛나는 1캐럿짜리 다이아몬드를 우연히 발견한 느낌일 것이다.

 해외 시장조사, 국내 시장조사, 업계지, 해외 트렌드 보고서, 그리고 소비자가 읽는 패션잡지를 모두 보고 거리에서 시장의 융합 반응을 살피는 필자에게 홍대역 관찰은 일종의 퍼즐 맞추기 같은 시간이다. 소비자들의 패션과 트렌드에 대한 모방, 창조, 수정, 보완, 그리고 재해석을 볼 수 있으며 막연히 생각하던 시장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거리마다 결이 있다. 강남의 화려한 여성들과 남성들은 특수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많기에 시간대별로 선별해서 정보를 모아야 한다. 예전에 고가 외제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의 패션을 알기 위해서 아주 독특한 장소를 찾은 적도 있다. 바로 호텔 피트니스센터였다. 패션과 자동차는 교차 공식을 가진 면이 있기에 고급 호텔 주차장도 특별 계층의 스타일을 알기 위한 좋은 사냥터(?)다. 캐주얼 브랜드를 런칭하기 위해서는 이대, 대중성과 무난함을 찾기 위해서는 신촌, 중장년층 여성들의 스타일을 알기 위해서는 백화점 9층에 있는 식당가 등, 그러나 이것도 항상 변하기 대문에 유념해야 한다. 평온하게 흐르는 강가에 갑작스러운 물살을 만날 때가 있다. 그 원인은 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강바닥에 있다. 낮거나 좁거나 아니면 막혀 있을 때 물살이 빨라진다. 시장조사에서 거리의 물(넘쳐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물 안에 있는 결(컨셉을 가진 사람)에 해당하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결에는 의미가 다른 총 4개의 정의가 있다. 첫 번째는 짜임새와 조직 그리고 구성을 뜻하는 텍스처가 있다. 나뭇결, 비단결, 그리고 살결이라고 표현할 때 이 단어를 쓴다. 두 번째 의미는 성질, 성향, 그리고 성격을 표현할 때 사용된다. 세 번째는 아침결에, 잠결에 꿈껼처럼 사이와 때를 표현할 때 사용된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물, 숨, 소리의 흐름과 동작을 말할 때로 wave를 사용한다. 
 
 '결 따라 움직인다'는 말은 순리적으로, 자연스럽게, 힘을 들이지 않고 그리고 빠르게 해낸다는 의미가 있다. 패션 마케터가 결을 따라서 마케팅을 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단계를 따른다. 하나는 앞서 말했듯이 시장의 결을 찾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 결을 따라서 브랜드를 런칭하는 것이다. 먼저 시장의 결을 찾는 것은 '물(거대한 흐름)'을 봐야 한다. 바다 안에도 난류와 한류가 서로 돌고 있고, 공중에도 한랭전선과 온난전선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에도 결이 있다. 결을 보기 위해서는 옷만 보면 안 된다. 신발로 시작해서 귀에 붙어 있는 귀걸이까지 살펴야 한다. 그리고 사람의 상징인 얼굴도 보아야 한다. 과연 패션과 얼굴이 서로 조화로운지, 아니면 옷을 그저 걸친 것인지도 확인해야 한다. 그러니까 옷을 보는 것이 아니라 패션, 곧 옷으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할 수 있는 사람과 단순 브랜드만 걸친 사람을 구별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패션 마케터는 사람에게 옷을 입히는 사람이 아닌가? 결국 옷 입은 사람들을 통째로 보면서 직관을 이용해서 많이, 깊이, 그리고 자주 비슷한 스타일들의 결을 살피는 것이다. 그것은 트렌드와 미래 시장의 결을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속옷 조사를 위해 대중목욕탕에서 일주일 동안 산 적도 있다. 여자 속옷을 알기 위해 처음 만난 여자 열 명에게 그들이 집에서 가져온 속옷을 직접 보면서 장단점을 들어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쥬얼리 브랜드를 런칭하기 위해서 2호선 12량 지하철 안을 돌아다니면서 대학생들의 목과 귀만 쳐다본 적도 있었다. 여자들의 심리와 쇼핑 동선을 알기 위해 얼굴도 알지 못하는 여대생의 다이어리를 수십 권이나 꼼꼼히 살펴보기도 했다. MP3플레이어 제품을 파악하기 위해 염치 불구하고 처음 보는 이에게 다가가 "혹시 어떤 제품을 쓰세요?"라고 물어 보기도 한다. 
 
 브랜드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시쳇말로 얼굴에 철판을 깔아야 한다. 어떤 이를 만나도 '저 사람들은 이런 브랜드를 사용한다'는 일종의 초능력이 생기지 않으면 브랜드를 제대로 알 수 없다. 브랜드 책에서 '초능력'을  키우라고 이야기하는 건 반복된 경험에 기반한 훈련된 직관만이 브랜드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주기 때문이다. 

 '무엇을 볼 것인가'와 '어떻게 볼 것인가'를 구분하는 건 말장난을 위한 것이 아니다. 브랜드 인사이트 능력을 올리는 전혀 다른 차원의 학습 방법이다 .무엇을 볼 것인가가 '발견'이라면 어떻게 볼 것인가는 '해석'이다.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서 어떻게 사랑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하고, 
무엇을 입었는가를 물어 보면서 무엇믈 말하려 하는가를 들어야 한다.
무엇을 먹는가를 묻고 어떤 트렌드를 즐기는가도 파악해야 하며,
오늘 무엇을 사는가에서 무엇이 부족한가도 찾아야 한다.
어떤 컬러를 선호하는가를 질문하면서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가를 고민하고
어떤 휴대전화를 쓰는가에 따라서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가도 확인해야 한다.
상품을 사는가와 브랜드를 수집하는가라는 질문은 너무나도 다른 소비자의 내면을 보게 한다.

 브랜드를 알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하는 것은 시간 여행이라고 불리는 '시장조사'다. 특히 거리 조사를 많이 하는데 무작위 혹은 일정 조건을 가진 사람들에게 질문한다. 얻는 것은 브랜드 인지도에 따른 숫자다,,,,간혹 주변 사람들이 '소비자 조사'를 얼마나 신뢰하는지 물어 오는 경우가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될 것 같으냐를 조사하는 건 쉽다. 출마한 후보 중에서 뽑으면 한다. 하지만 소비자에게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가 무엇이냐고 물어 본다면 너무 많아서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워 하는 상황이 연출되게 마련이다. 나는 소비자 조사 신뢰도에 대한 질문에 50%는 믿고, 50%는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 필자가 믿는 50%도 나도 알고 있는 답변이 나올 때만 믿는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 나오면 반드시 FGI 혹은 1:1 심층조사를 통해서 확인을 해보아야만 한다.

  옷만 보지 말고 그 옷을 입은 사람을 보고, 사람만 보지 말고 공통점을 보고, 공통점만 보지 말고 패턴과 변형점을 보아야 하고 멀리서 큰 그림으로 미래도 봐야 한다. 이것을 경영학에서는 시장조사라고 하지만 패션업에 종사했던 필자는 시간 여행이라고 말하고 싶다. 트렌드는 분침, 그리고 스타일은 시침이라는 시계를 가진 패션 마케터들에게는 조사가 아니라 여행이다.

 결국 이렇게 시장의 결을 찾는 훈련의 대단원은 브랜드 런칭에 있다. 왜냐하면 브랜드 런칭도 결따라 런칭해야만 빠른 시간 내에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브랜드의 결을 결정하는 것은 사람이다. 사람으로 이루어진 조직력이야말로 브랜드의 단단한 결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브랜드 구성의 아이디어와 컨셉, 그리고 아무리 많은 자본이 있더라도 사람으로 구성된 브랜드 결이 허술하다면 그 브랜드는 경쟁 브랜드와 시장 경기에 쉽게 와해될 수 있다. 최고의 브랜드는 최고의 전문가와 최고의 태도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그 결이 완성된다. 결속력이 확실해지면 브랜드 런칭에서 매 순간 오는 위기 앞에 불굴의 결단력으로 의사 결정력을 높여 런칭의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좋은 사람이 모였다고 항상 강한 브랜드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브랜드의 결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잠재 고객의 성향을 파악해야 한다. 기업이 좋은 상품을 만들어 고객을 섬기면 고객은 시장에서 강력한 브랜드로 만들어 돌려준다. 브랜드는 고객의 성격으르 촘촘히 짜인 원단처럼 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브랜드는 고객의 가치관, 고객의 성향, 고객의 행복, 그리고 고객의 것이 되어야 한다. 브랜드와 고객이 얼마나 하나가 될 수 있는가가 브랜드의 결을 결정한다.
 
 그리고 브랜드의 결을 결정하는 것은 타이밍이다. 나무도 사계절을 지내면 단단한 결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브랜드도 어떻게 런칭해서 어떤 기후로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가에 따라 결이 달라진다. 아마 10년 이상 회사를 경영해 본 사람이라면 성공과 타이밍은 같은 말이라는 것에 공감해 줄 것이다. 시장은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가? 경쟁자는 어떤 약점 때문에 어려워지고 있는가? 새로운 미래 강자는 어디서 오고 있는가? 지금 고객은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에 관한 것을 '시간'으로 환산하고 환원하여 브랜드 런칭의 때를 결정해야 한다. 브랜드를 런칭하면서 강한 경쟁자를 만나면 경쟁을 통해서 강해지던지 아니면 사라져 버린다. 시장에 새롭게 런칭되는 브랜드는 경쟁 브랜드가 결정한 규칙과 그들이 만든 시장에 던져진 것이다. 이미 시장의 결이 있기 때문에 그 결을 거슬러 움직이는 것은 어렵다. 일상에서도 결을 거슬러 자르거나 찢는 것은 많은 에너지가 들고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 방법은 단 한가지다. 우리의 강점을 경쟁자의 약점의 결에 따라서 멈추지 않고 계속 공격해야 한다. 일단 결이 찢겨지면 공격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이때 사용하는 결이 마지막 결로서 흐름이다. 최고의 패션 브랜드는 트렌드를 따라가지 않고 만드는 브랜드다. 왼손으로는 스타일을 만들고 오른손으로 트렌드를 만드는 브랜드는 거대한 문화의 흐름을 만든다.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거부하거나 방어할 수 없는 거리의 물결을 통해서 단 한 번에 시장을 바꾸어 놓아야 한다. 왜냐하면 런칭하는 신규 브랜드는 시장 안착의 시간을 끌면 끌수록 시장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거리의 결을 브랜드의 결로 잇다>

 시장조사는 청각, 시각, 후각 등 가능한 감각기관을 모두 동원해 찾고자 하는 것을 찾는 일이다. 일상에서는 별로 사용하지 않는 직관도 동원해야 한다. 인간의 야생성이 뿜어져 나오는 시기다. 정보가 늘 부족하기 때문에 지식보다는 감각과 직관에 의존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아드레날린이 분출되면서 전투 직전의 긴장감 같은 것이 온몸에서 느껴진다. 그러다 보면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던 감각들이 모조리 살아나면서 눈앞의 온갖 현실이 색다르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같은 사물도 목적하는 바와 필요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시장조사야말로 고정관념에서 탈출하고 혁신적인 시각을 가져올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나는 직원들에게 종군기자의 마음으로 시장조사에 임하라고 말한다. 다른 회사 직원에게는 다소 완곡하게 표현하여 내셔널지오그래픽 기자처럼 임하라고 당부한다. 종군기자는 총알 대신 메모리를 카메라에 끼워 넣고 목숨 걸고 사실을 찍는 사람이다. 과연 그 이유가 높은 생명수당 때문일까? 아프리카와 아마존 정글에서 치명적인 독과 매서운 이빨을 가진 동물들의 위협을 무릅쓰고 사진을 찍는 작가들은 재미만으로 그 일을 하는 것일까? 그들의 내면에는 어떤 치열함이 있을까? 그들의 감각기관은 일을 하는 동안 어떤 상태에 있을까? 시장조사는 관광이 아니다. 시장조사는 마케터의 소명이 시작되는 지점이며 혁신으로 가는 단초다. 

 시장조사는 대개 길어야 한 달 이내, 보통 일주일에서 10일 정도로 이루어진다. 실제로 그 시간 내에 성공할 만한 아이디어를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불가능한 시간에 필요한 것을 찾아내야 하는 임무이기에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 다녀야 한다....시장조사의 궁극적인 목적은 앞서 말한 대로 다르게 보는 법과 새롭게 보는 법을 배워서 한국에서는 느끼지 못하던 것을 새롭게 느끼기 위한 것이다. 경험상 이런 혁신적인 자세를 배우기 위해서는 자의적으로 극한적인 상황과 위기를 만들 필요가 있다. 이상하게도 마케팅 세계에서는 절박하면 대박 아이디어가 나온다. 시장조사의 기술은 집중해서 제대로 많이 보는 것이다. 긴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시장조사를 하면서 일주일이 지나면 그곳이 익숙해져서 더 이상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패션 마케팅이 다른 분야보다 수월한 점은 '옷은 입고 다닌다'는 것이다. 거리를 활보하는 어떤 사람이 치약을 어떤 것을 썼는지, 자동차는 무엇을 선호하는지, 어제 저녁에 먹은 과자는 무엇인지, 그리고 주머니 속에 있는 휴대전화는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션 마케팅이 아지곧 전문화되지 않고 있는 것은 패션 브랜드들이 이런 방법을 통해서 컨셉, 전략 그리고 상품을 만들어 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들어가도 거리처럼 결이 있다. 인터넷 쇼핑몰이 활성화될 때 그 누구도 패션쇼핑몰이 이토록 크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어떤 보고서도 예측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속옷을 팔면서 매출 300억 원 이상을 올리는 곳도 있고, 천억 원대 쇼핑몰들도 영업을 하고 있다. 왜 우리는 이러한 트렌드의 결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을까? 지금도 패션 브랜드는 온라인 활용을 홈페이지 혹은 카달로그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그 이유는 발마과 물처럼 소비자의 새로운 욕구와 채워지지 않는 욕구를 느낄 수는 있지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저 쳐다만 보고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인터넷도 거리다. 거대한 시장의 거리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패션의 시작은 어디서부터일까? 대답하기에 당혹스러운 질문이지만 답변하려고 생각할 때, 갑자기 패션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 이 질문을 다른 말로 번역한다면 패션인들은 패션의 영감을 어디서 얻는가다. 일반적인 순서로 나열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경쟁 브랜드로부터, 1등 브랜드로부터, 옛 전통으로부터, 소비자들의 옷차림, 대중적 선호 컬러, 일반적인 국민들의 정서, 연예인들의 스타일, 해외 트렌드, 사회 문화적 소비 코드, 드라마, 영화를 보면서 그야말로 천차말별이고 가지각색이다. 그래서 패션의 영감의 시작은 그 무엇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이 통합되어 직감과 직관에서 파생되는 것이다. 


@Unitas brand vol. 15 中